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보도자료

Home > 체육회 알림 > 보도자료

' 휠체어 마라톤대회에 너를 보내고 / 최명란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신작시)

관리자
2008-03-07 14:55:13
조회 3,447

휠체어 마라톤대회에 너를 보내고

                            ㅡ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신작시

최명란

 

  휠체어 마라톤대회에 너를 보내고 이제 너의 가여운 신발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고현장에 버려진 네 어린 신발을 움켜쥐고 통곡하던 나의 눈물도

  이제는 흙 속에 천천히 스며들어 제비꽃의 가는 뿌리를 적신다

  병원 도착하자마자 결국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잃고 네가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았을 때

  나도 그만 두 다리를 잃고 그대로 주저앉아 물이 되었다

  길이란 길은 모두 사라지고 신발마저 저 혼자 한강으로 뛰어내린 뒤

  아파트 베란다에 처박혀 뿌리마저 썩어가는 빈 화분처럼 살아오다가

  오늘 아침 휠체어 마라톤대회에 너를 보내고 조용히 혼자 미소 지어본다

  너에게도 달릴 수 있는 길이 있어서 길가에 꽃들이 피어난다

  헬멧을 쓰고 두 팔로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달려가는 뒷모습들이 유유히 푸른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 같아

  네가 남한강 어디쯤에서 휠체어를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하늘을 날면 너의 산맥과 평야를 한없이 내려다보아라

  지나가는 곳마다 더욱 더 낮아지는 저 겸손한 논과 밭을 보아라

  추수가 끝난 빈 들판에 볏짚을 태우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푹신한 볏단 위에 잠시 내려와 쉬었다 달려라

  거리에 응원 나온 사람들보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자 열심히 박수를 친다

  남한강 물오리들도 너를 따라가느라고 재빠르게 물살을 가른다

  그래도 너에게는 언제나 고마운 손과 너를 사랑하는 무릎이 있다

  오체투지 하는 아버지를 따라 무릎으로 히말라야를 기어오르던 티벳의 한 소년이러고 생각해도 좋고

  휠체어를 탄 낙타가 되어 타클라칸 사막의 어느 마을 우물가

  물을 길어 누나에게 나누어주던 키 작은 한 소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사막을 하나씩 가슴속에 품고 있다

  이제 너는 너의 사막에 깊은 우물을 파라

  지구가 웃음을 터뜨리면 물줄기를 뿜으면 해가 질 때까지 배고픈 양들과 목마른 낙타에게 물을 먹여라

  지구도 둥근 휠체어 바퀴를 열심히 굴리며 굴러간다

  누구나 지구라는 휠체어를 타고 살아간다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세계사) 에서>

 

※최명란 시인

1963년 진주 출생. 세종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네이버 블로그 공유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