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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변호사 웹 매거진] 이 사람의 삶과 꿈(서울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정금종) 2008년 11월호

관리자
2008-11-19 13:57:07
조회 2,532

지난 9월 11일, 역도선수 정금종(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씨에게는 아주 뜻 깊은 날이었다. 역도선수로서 은퇴를 앞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다. 24년간 장애인 올림픽 7번 연속출전에, 한 번도 메달을 놓친 적이 없던 그다.
이번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정금종 씨는 남자 56kg급에 출전해 1차 시기에서 180kg에 성공했다. 하지만 2차 3차 시기에서 역기가 흔들려 더 이상의 기록을 내지 못했다. 아쉽게 4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3위를 기록했던 영국 선수가 3차 시기에서 2분 안에 경기를 끝내지 못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실격 처리됐다. 결국 운명의 신은 정금종 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의 인생만큼이나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가장 무서운 상대는 바로 ‘나’
10g 덕분이었다. 같은 무게의 바벨을 든 선수 3명 중에서도 태국 선수보다 10g이 덜 나갔던 정금종 씨가 동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단지 운이 좋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체중 감량을 위해 그가 견디고 참아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고 난다면 말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3개월 만에 몸무게를 무려 18kg을 뺏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상체에서 고스란히 그 무게를 빼야 했으니 그 고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역도는 외로운 종목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쇳덩어리 한 번 번쩍 들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늘 자신과의 싸움, 체중과의 전쟁이죠. 상대팀, 상대방이 있는 경기가 많은데 역도는 언제나 혼자 하는 운동이잖아요. 게다가 요행이란 있을 수 없어요. 자신이 힘을 써서 들어 올린 만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역도는 거짓말을 안 해요. 게다가 10명의 선수가 출전하면 10명의 무게를 다 머릿속에 그려 넣어야 해요. 그래서 머리싸움이 잦죠. 0.1kg 더 들어 올리려고 4년을 고생하는데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더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죠. 왜, 바벨에 파리 한 마리만 앉아도 기울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경기가 끝났다고 해서 마냥 쉴 수도 없다. 꾸준히 들어 올리지 않으면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생활을 28년을 해왔다. 대회가 있을 때마다 10~20kg은 기본적으로 빼야 했다.
“체중이 안 빠져 더운 나라에서 대회가 열릴 때도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입고 간 적이 있었어요. 민소매를 입어도 더운 날씨에 두꺼운 점퍼를 입고 다니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사실 몸무게가 5kg 정도 빠지면 더 이상 빼기 힘든 시점이 와요. 그때는 물만 먹어도 다시 찌거든요. 체중조절 하다가 목숨을 잃는 선수도 있어요. 그만큼 생명을 걸고 하는 싸움이에요.”

 

 

평생 받을 사랑과 성원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매번 올림픽대회가 열릴 때마다 외로움과 소외감이 많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들은 똑같이 땀 흘리고 똑같은 양의 연습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쪽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열광을 하고, 다른 한 쪽은 늘 관심 밖의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운동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은퇴를 결심한 마지막 대회였기에 욕심을 비운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 대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 대회와 사뭇 달랐다.
“역대 장애인올림픽에 표가 없어서 못 들어간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는 들어가고 싶어도 표가 없어 못 들어갈 정도였어요. 전 경기장이 매진사례였죠. 우리 국민들도 뜨겁게 응원해 주었고, 경기가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어요. 이런 모습들이 제가 메달 따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은 그의 평생 잊지 못할 가슴에 남을 대회가 됐다.

역도, 내 인생의 운명을 바꾸어 놓다
“안 돼!”, “네가 뭘 할 수 있겠니?”, “장애인이 어딜 돌아다녀?”
3살에 소아마비를 앓은 그가 어려서부터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다. 그러니 장애인이 운동을 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으로도 할 수 없었다. 거절과 단절만 맛보다 보니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꿈도 희망도 없었다.
어린 시절 삼육재활원에서 300여 명의 장애인과 함께 지내면서도 특별히 즐길 만한 문화도 없다시피 했다.
“80년대 초에 역도라는 운동이 처음 보급되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역도를 권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하라니까 했죠. 근데 성적이 꽤 잘 나오더라고요. 그때는 바벨이 어디 있어요? 쇠 파이프에 시멘트를 동그랗게 굳혀 만들어 연습했죠. 역도는 힘으로 움직여야 할 수 있는 운동이어서 하면 할수록 몸도 좋아지는 게 느껴졌어요. 소아마비 장애우의 90% 정도는 허리가 휘어지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니 밸런스가 맞는 거예요. 이제는 목발도 잘 짚고 다니고, 버스도 타고, 산도 올라다녀요.”
그는 역도뿐 아니라 농구, 수상스키, 스키 모두 접해봤다. 운동이란 운동은 거의 섭렵했고 모두 중급 정도의 실력이다.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것은 다 이뤘거든요. 휠체어 타고 패러글라이딩까지 했으니까요. 요즘은 번지점프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언젠간 가능하겠죠?”
아마 정금종 씨가 최초의 장애인 운동선수가 아니었을까? 역도를 하면서 체력이 많이 좋아졌고,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거기다 그의 사고를 한 번 더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다.
“처음 참가했던 1984년 LA올림픽 때였다. 시민들이 장애인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으러 오는가 하면, 의족을 한 선수가 치마를 입고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발상의 전환.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었다.

 

운동, 세상으로 내딛는 또 다른 통로
“그 당시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죠. 전 지금까지 그 많은 변화를 겪으며 왔어요. 장애인운동에 부정적 시각을 갖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은 큰 영향을 받아요. 모든 것에서 열외되는 느낌이 들죠. 지금은 세상이 변해 장애인 메달리스트에게 연금도 나오고, 장애인 체육지도자도 생기고, 체육시설도 늘어나고, 관련협회도 생겨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지만요.”
현재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정금종 씨는 장애인선수들을 만나 고충을 들어주고 꾸준히 정부에 건의하고 대변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저 권위만 내세우는 것이 제자리는 아니라고 봐요. 어딜 가나 곱지 않은 눈길을 받을 터이고, 어딜 가나 문턱이 높을 터인데 협회에 와서도 그런 대접을 받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원처리를 도맡게 되네요.”
2005년에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생기면서 장애인체육업무가 보건복지과에서 문화관광부에 소속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각 시도 장애인 체육회가 생겼고, 시도 체육회 안에 종목별 연맹도 발족했다.
“운동 종목별로는 36개의 연맹이 있는데 그것도 저희 체육회에서 관리를 해요. 운동관련 클럽이 60~70개, 운동교실도 30~40개가 있어요. 이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있죠.”
장애인은 이동권 등의 장벽으로 한 번 맘먹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걸 깨고 나오도록 하는 게 목적이기에 그들에게 운동뿐 아니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정금종 씨는 주장한다.
“처음엔 외부세계로 발을 내딛기까지가 힘들지만 일단 내딛고 나면 차츰 성격이나 사고가 다 바뀌더라고요.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팀을 이루거나 단체로 경기를 하다 보니 함께 아우르고 돕는 법을 배워요. 그리고 땀 흘리며 부딪히고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어울리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오지 말라 해도 나오죠. 이것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변화예요.”

 

정금종 씨는 장애인들에게 운동이 꼭 필요하고 더 보급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동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는 것을 경험한 장애인들은 평생 운동을 가까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부지원이 절실하다.
소수 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도 힘주어 말했다.
“일례로 요즘 모든 건물의 턱을 낮춰놓고 경사로를 만드니까 휠체어 타는 사람보다 어르신, 유모차, 자전거, 짐 싣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이 이용하잖아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때도 몇 사람 때문에 그걸 만드느냐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결국 지하철 공사할 때 한 번에 하면 백 원들일 공사를 이제는 천원 들여 만들고 있습니다. 그때 만들었으면 비용 면이나 효율 면에서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선진국의 경우, 꼭 장애인이 아니어도 안경 쓴 사람, 노약자, 여자, 비만, 놀림을 받는 사람 등 보이지 않는 장애까지도 장애인의 범주에 넣어요. 그렇게 정책을 만들죠.”
말 끝에 정금종 씨는 자신이 당해보지 않으면 피부에 와 닿지 않고, 그래서 강 건너 불구경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들은 나와 다르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체육은 장애인체육과 비 장애인체육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분류하고 나눠놓는 것이 우리 장애인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어요. 운동은 좋으면 누구든 하는 거예요. 굳이 나눌 필요 없다고 봅니다. 원하는 곳 어디서든 할 수 있어야죠. 이런 분류가 싫어서 저희 서울시 장애인체육회가 창설될 때 저희 안에서만큼은 프로와 아마추어,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나누지 말자고 했어요.”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실은 잠실 종합운동장 내에 설치되어 있지만 그 커다란 운동장 한 번 사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육상트랙을 하고 싶어 일반 운동장을 빌리려 해도 제도적으로 제어가 많이 돼요. 그런 부분이 힘들어요. 현재는 장애인체육회로 시작을 했지만 결국은 장애인 비장애인이 더불어 같이 해야 할 부분이에요. 사실 장애인 중에 비장애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운동도 있어요. 비장애인을 가르칠 정도 실력이지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오진 않아요. 그런 벽을 허물자는 거죠. 장애인끼리 비장애인끼리 끼리끼리가 아니라 누구나 함께 하는 체육회가 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예요.”
그는 자신이 역도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깊은 감사와 혜택을 받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리고 받은 만큼 또 다른 소외된 이웃을 위해 환원하겠다는 마음을 늘 가졌다.
“운동을 하면서도 장래를 위해 기술을 배워보자 싶어 직업학교에서 금은세공을 전공하고 양장을 배웠어요. 그 기술을 밑천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차츰 제 목표가 정해지더라고요.”
운동하면서 알뜰살뜰 모아 온 통장을 털어 발달장애아 5명과 함께 지낼 그룹홈을 만들었다.
“주변에서야 반대가 심했죠. 너 잘 사는 걸로도 충분하다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반대하니 더욱 결심이 굳어졌어요. 제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거든요.” 그의 이런 성격 덕분에 결혼 전 10년 넘게 알고 지낸 지금의 아내에게 차이고서도 끝까지 설득해 결혼에 성공했다.
장애인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었기에 그들의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정금종 씨다. 그래서 수영, 사이클 등 아이들에게 더 많은 운동을 접해볼 기회를 주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한 시설인 ‘다솜공동체’는 현재 일산과 당진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기존시설의 틀을 깨보고자 노력한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설과는 차별화를 두었다. 그렇게 15년간 그룹홈을 운영해오면서 아이들의 재능을 최대한 키워주고자 노력했다. 즐겁게 생활하고 놀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정금종 씨가 그려오던 공동체다.
“장애인 중에는 충분히 능력이 있지만 단지 장애인이란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늘 안쓰럽고 안타까워요. 우리 식구들이 서로 만들어가며 빛을 내고,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바로 바람이에요.”
28년간 쉬지 않고 바벨을 들어 올려 각종 메달을 휩쓴 정금종 씨는 이제 그의 듬직한 팔뚝으로 장애인의 꿈과 희망을 바벨 한 아름 쌓아 올린 뒤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정금종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수상내역
2008년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대회 역도
남자 56㎏급 동메달
2006년 제4회 세계 장애인역도선수권대회 역도
동메달
2004년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대회 역도
67.5kg급 은메달
2000년 제11회 시드니 장애인올림픽대회 역도
금메달
1996년 제10회 아틀란타 장애인올림릭대회 역도
67.5kg급 금메달
1988년 제8회 서울 장애인올림픽대회 역도 금메달
1984년 제7회 뉴욕 에일즈버리 장애인올림픽대회 역도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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